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엘리자베스 헬란 라슨의 그림책 《나는 죽음이에요》를 처음 만났을 때 제목부터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나는 죽음이에요.’
조금은 낯설고 무거운 제목이지만, 책을 펼치고 나면 우리가 알고 있던 죽음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이 그림책에서 죽음은 무섭고 어두운 존재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발그스레한 뺨에 푸른 옷을 입고 머리에 꽃을 단 모습으로 작은 동물부터 큰 동물, 그리고 사람을 찾아갑니다. 어린아이에게도 찾아가고, 나이 든 사람에게도 찾아갑니다. 죽음은 특정한 사람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두려움부터 떠올립니다. 죽지 않기를 바라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죽음을 조금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습니다
《나는 죽음이에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죽음이 삶과 떨어져 있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살아 있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내일도 당연히 오늘처럼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 그림책은 아주 조용하게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과 오늘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60대에 읽어도 좋은 그림책
그림책이라고 해서 어린이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여러 계절을 지나온 어른에게 더 깊게 다가오는 그림책도 있습니다. 젊을 때에는 죽음을 멀리 있는 이야기처럼 생각했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부모님이나 친구,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 ‘앞으로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내고 싶을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나는 죽음이에요》는 이런 질문을 직접적으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죽음을 조용히 바라보게 하면서 지금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삶을 생각하는 것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삶이 어두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오늘의 평범한 순간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 가족에게 건네는 짧은 안부, 햇살 좋은 날 천천히 걷는 시간. 평범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순간들이 사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귀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죽음’보다 ‘삶’이라는 단어가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삶을 더 소중하게
엘리자베스 헬란 라슨은 죽음을 숨기거나 지나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풀어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추천도서에서도 이 책을 인간의 영원한 화두인 ‘죽음’을 또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는 그림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해 보는 일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죽음이에요》는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삶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외면하기보다 조금씩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삶이 소중하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존재도 생각하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가 평범하게 흘러갔다면, 그 평범함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정보
- 책 제목 : 《나는 죽음이에요》
- 글 : 엘리자베스 헬란 라슨
- 그림 : 마린 슈나이더
- 옮김 : 장미경
- 출판사 : 마루벌
- 분야 : 그림책
- 주제 : 죽음, 삶, 생명, 존재, 삶의 의미
현재 판매되는 개정판은 2024년 4월 20일 출간되었으며 48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분께 권하고 싶어요
죽음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하고 싶은 분, 삶과 죽음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 보고 싶은 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분, 그리고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 보는 60대 이후의 어른에게도 권하고 싶은 그림책입니다. 그림책 한 권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줄 수는 없겠지만,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조금 부드럽게 바꾸어 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