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D.O. 산토스의 그림책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사랑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림책을 읽다 보면 유난히 제목이 오래 마음에 남는 책이 있습니다. 산토스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도 그런 그림책입니다. ‘사랑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아이에게도,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건넬 수 있는 따뜻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에는 사랑한다는 말 뒤에 ‘그리고 기억해’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저는 이 두 번째 말이 이 그림책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지금의 감정이라면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는 말과 기억한다는 말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과 순간을 만납니다. 어떤 만남은 아주 짧게 지나가고, 어떤 관계는 오랜 시간 이어집니다. 그중에는 시간이 지나도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함께 웃었던 일, 따뜻한 말을 들었던 순간, 누군가가 내 편이 되어주었던 기억처럼 아주 평범했던 시간이 오히려 오래 남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마음과 ‘기억한다’는 마음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중하기 때문에 기억하고, 기억하기 때문에 다시 소중해지는 것.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라는 제목은 바로 이런 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림책은 짧지만 마음은 길게 남는다

그림책의 매력은 많은 이야기를 적은 글로 설명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글이 적은 만큼 독자는 그림을 천천히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그림 속 이야기를 따라가고, 어른은 그 장면에서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림책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장르입니다. 아이에게는 이야기로 다가오고, 어른에게는 기억과 감정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역시 제목부터 독자에게 자신의 기억을 돌아보게 합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나에게 사랑을 표현해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지금도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무엇일까?’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책을 읽는 시간이 조금 달라집니다.

아이와 함께 읽는다면

이런 주제의 그림책은 아이에게 사랑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하기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은 뒤에는 정답이 없는 질문을 건네보세요. “사랑한다는 건 어떤 걸까?”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해?”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어?”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 아이의 대답을 어른이 정리해주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기억이 있고, 어른에게는 어른만의 기억이 있으니까요. 오히려 아이의 대답을 가만히 들어보는 것 자체가 그림책을 함께 읽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이 읽어도 좋은 그림책

그림책을 어린이의 책이라고만 생각하면 놓치는 것이 많습니다. 어른이 그림책을 읽는 순간에는 어린 시절과는 다른 의미가 생깁니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했고, 지나간 시간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억’이라는 단어는 어른에게 더욱 깊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기억 속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었던 평범한 하루가 훗날에는 가장 그리운 장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지금을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좋은 그림책은 거창한 답을 알려주기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도 그런 책으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현재이고 기억은 미래다

책의 제목을 다시 바라봅니다.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두 문장은 현재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사랑하고, 그 사랑을 기억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오래가는 선물 중 하나가 아닐까요. 무언가를 많이 해주지 못했더라도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함께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그 마음을 잊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책 한 권을 읽는 일은 때로 책 속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책을 덮은 뒤 나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를 읽고 난 뒤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지. 잠시 멈춰 생각해봅니다. 아마 이 책의 가장 좋은 독법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사랑과 기억을 꺼내어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평범한 하루가 흘러갑니다. 하지만 언젠가 오늘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소중한 사람에게 조금 더 따뜻한 말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짧은 말이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말입니다.

댓글 남기기